한국의 개발원조 1세대가 채 30년이 되지 못한 우리나라의 ODA사업의 거의 시작부터 최전방에서 온몸으로 부딪쳐 가며 겪은 생생한 무용담이라길래 무척 흥미를 끌었던 책이다. 작년 말에 출간되었는데 사서 보기는 아깝고,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해 두었다가 이제야 연락이 와서 보게 되었네 ㅎㅎ -_-;;; (신청하길 잘했네 잘했어~~ ^^)
필자는 처음에는 일본으로 갔다가 코이카에 입사하여 태국, 중국, 베트남을 거쳐 이라크에도 근무하게 되는데, 눈치 챘겠지만 정말이지 평탄하지(?) 못한, 가장 위험하고 가장 열악한 이라크에서의(그것도 이라크 전쟁이 터진 2003년 당시!) 경험이 책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아직 해외 원조에 대한 구체적인 매뉴얼은 고사하고 인프라와 인력조차 까마득히 부족한 상황에서 재건을 위한 이라크에 코이카 사무소를 개소하는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을 겪은 이야기. 무엇보다도 전쟁 후의 혼란이 극도에 달한 이라크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안전'을 한국 정부로부터 충분히 보장받지 못한 상황에서도, 열악함을 극복하고 현지의 임무를 수행하고자 고군분투한 저자의 눈물겨운 노력이 국제개발협력에 몸담고 있는 모든 분들께 커다란 울림과 귀감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하여튼 한국 사람들은 사막 한가운데나 무인도에 뚝 떨궈놔도 살아남을 사람들임은 분명하다... 나 빼고 ㅋㅋ)
역시 한국의 대외원조 베테랑답게 저자는 자신의 무용담 늘어놓기에서 그치지 않고 한국의 ODA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국제사회의 개발협력 동향까지 책 뒷부분에 제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특히 21세기에 평화 구축과 안보가 큰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데, 금세기에(또는 비교적 최근에, 20세기 말) 벌어진 엄청난 살육과 전쟁은 대부분 국가 간의 분쟁이 아닌 한 나라 안의 내전임을 강조한 부분이 무척 와닿았다. 캄보디아, 르완다, 시에라리온, 코트디부아르, 그리고 가장 최근의 시리아까지... 물론 이면에는 제3국가의 국익까지 얽힌 복잡한 국제정치의 암투(暗鬪)가 깔려있긴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을 찾자면 모두 빈곤이 만들어 낸 참극임을 저자는 예리하게 분석해 냈다. 저 멀리 아프리카와 중동, 서아시아에서 벌어지는 비참한 일들이 한국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왜 '아무 상관 없는 일'이 아닌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지구촌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어떻게 연관되어 있고 왜 우리도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그리고 나아가 작은 실천으로라도 옮겨야 하는지) 이 책은 호소하고 있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에게 우리가 왜 국제개발협력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는지 물어본다면, '예전에 우리나라도 국제 사회의 도움을 받았으니까'라는 답이 아마 가장 먼저, 많이 돌아올 것이다. 물론 맞는 말이다. 한국은 세계 여러 나라에게 많은 빚을 진 나라이다. 나라 자체가 다른 나라들의 도움으로 세워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한국이 예전에 도움을 받아서, 우리나라 국제전략상 자원 등 국익이 걸린 나라들도 있어서, 다 좋다. 그러면 도움 받은 것을 다 갚고, 그 나라가 한국에 별다른 이익이 안된다 싶으면 원조를 거둬버릴 텐가? 또 만일 우리가 특별히 다른 나라의 도움을 받은 적이 없었다면, 딱히 원조에 대한 의무감이 없었을까? (역사에 '만일'은 없지만 그래도 가정해보자) 알다시피 대답은 '아니오'다. 다른 나라의 원조를 받은 적이 (아마도 거의) 없는 미국과 북유럽은 왜 GNI 대비 높은 비율의 예산을 해외 원조에 투입하는가. 위에서 저자가 언급했듯이, 빈곤이 유발하는 수많은 문제가 국경을 넘어 전 세계인에게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점차 고민해야 하는 난민이나 이민자 이슈가 대표적일 것이다. 빈곤은 대부분 폭력을 동반한 사회 혼란을 야기하며, 이제 오늘날에는 국가의 장벽 안에서 해결할 수 없는 전지구적인 아젠다로 자리매김했다. (실은 모든 사안이 다 그렇다. 환경, 성 평등, 식량 문제, 인권 등등...)
저자가 짚고 넘어가지 않은 사안이어서 내가 또 언급하고 싶은 것. 국제개발협력은 (특히 한국 ODA는) 이제 '장기적인 안목'으로 접근해야 한다. 내 생각에 ODA가 한국에서 시작된 이래 우리나라 Aid Worker들은 30년간 참 열심히, 그야말로 70년대 '잘 살아보세' 정신 하나로 무장해서 억척스럽게도 달려왔다. 시행착오를 겪으며 경험도 어느 정도 쌓였지만, 아직도 단기적인 성과에 급급하고 말 그대로 '가시적인' 결과에만 집착하는 경향이 짙다. ODA가 국민의 혈세로 이루어지는 사업이다 보니 이해는 하지만, 이제 좀 더 긴 시야를 가지고 사업에 임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학교와 병원, 직업훈련센터를 지어주고 그걸로 원조를 했다고 생색내는 식은 이제 그만 하고, 우리가 만들어 준 곳의 운영이 잘 되는지, 지역 사회가 그 곳을 10년 20년 자체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역량이 갖춰졌는지, 아니라면 우리가 어떤 후속 조치를 뒷받침해 줄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즉 앞으로 내실과 지속성, 그리고 탄탄한 기본기를 갖춘 원조 체계를 구축하자는 것이다.
나 역시 한국, 나아가 세계의 Aid Worker 중 한 명으로써 국제개발협력의 진일보한 모습을 기대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