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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소설 읽는 노인(Un Viejo Que Leia Novelas de Amor) - Luis Sepulveda -

toonickle 2020. 1. 26. 20:49

다음 번 독서회의 주제가 '환경 및 기후변화'이길래, 예전에 우연히 환경 관련 책으로 검색 중에 찾아낸 작품.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남미 작가의 소설인데(그런데 알고보니 세풀베다는 세계적으로 엄청 유명한 작가였다...), 제목만 보면 무슨 환경과 관련이 있나... 싶다. 안그래도 남미 작가들의 책을 좀 더 접해보고 싶었는데, 뜻밖에 찾아냈고 게다가 무척 재밌기까지 해서 만족도 500%였던 선택! ^^

 

주인공인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 프로아뇨'는 에콰도르의 아마존 밀림에서 홀로 사는 노인이다. 노인은 조그만 강가 오두막에서 간소한 살림살이만 가지고 매달 두 번씩 자신의 동네를 찾는 치과의사를 통해 연애 소설을 받아 읽는 게 삶의 낙이다. 그렇게 평화롭게 만년을 보내고자 하는 노인의 바람은, 어느 날 끔찍한 시체 한 구가 그 지역 인디오들에게 발견되면서 방해를 받게 된다. 일의 내막인즉슨, 아마존을 무작위로 개발하고 그 안에 서식하고 있는 동물들을 함부로 밀렵하는 '양키'(미국인을 실제로 이렇게 책에서 지칭해 놓아서 웬지 미국인들이 읽으면 심기가 불편했을 수도...)들 중 하나가 살쾡이 부부의 새끼들을 잡아 가죽을 벗겨놓았던 것. 수컷마저 총상을 입힌 이 잔인한 사냥꾼은 결국 암살쾡이에게 보복당해 죽었고, 이마저도 분이 풀리지 않은 짐승은 복수를 위해 인간 사냥에 나섰던 것이다.

 

일대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뚱보 읍장은 밀림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노인을 앞세워 수색대를 꾸리고, 죄없는 주민들과 동물들에게 갖은 민폐(그러나 이 부분 때문에 이 소설이 더 재미있었던 것도 사실... ㅋㅋ 진짜 밉상으로 그려진다)를 끼쳐가며 암살쾡이 응징 작전을 펼친다. 그러나 독이 오른 짐승은 인간의 추적을 영리하게 피해가며 더 많은 살상을 저지르고, 결국 읍장은 노인에게 암살쾡이를 단독으로 처리해 달라는 요청을 하는데...

 

번역이 무척 잘 되어 있어 매끄럽고 흥미롭게 읽히기도 하지만, 여러가지 다양한 에피소드를 짧은 소설 안에 전혀 이질감 없이 버무리는 작가의 능력 또한 탁월하다. 전체적인 테마는 암살쾡이 추적이지만, 노인이 왜 연애 소설을 좋아하는지, 어떻게 노인이 그 지역의 원주민(수아르 족)들과 밀림에서 살면서 자연과 공존하는 지혜를 배웠는지 그 사연이 나오는 부분도 중간중간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녹아들어 독자들을 몰입시킨다.

 

 

노인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책을 읽었다. 그의 독서 방식은 간단치 않았다. 먼저 그는 한 음절 한 음절을 음식 맛보듯 음미한 뒤에 그것들을 모아서 자연스러운 목소리로 읽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단어가 만들어지면 그것을 반복해서 읽었고, 역시 그런 식으로 문장이 만들어지면 그것을 반복해서 읽고 또 읽었다. 이렇듯 그는 반복과 반복을 통해서 그 글에 형상화된 생각과 감정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 어떤 책은 정말 단어 하나, 문장 하나하나를 곱씹으며 읽는 맛이 있다. 주로 문학작품이 그렇지. 아니면 인생의 지혜를 전달해 주는 선현들의 경험담이나.

 

나는 글을 읽을 줄 알아. 그것은 그의 평생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이었다. 그는 글을 읽을 줄 알았다. 그는 늙음이라는 무서운 독에 대항하는 해독제를 지니고 있었다. 그는 읽을 줄 알았다.

=> 그렇다. 동감이다. 독서의 묘미와, 책읽기가 얼마나 인생을 풍요롭게 해주는지 깨닫게 되면 죽을 때까지 공허함과 무료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 평생 따분할 틈 없이 재미나게 살아갈 수 있다!

 

나이가 들면 느는 게 삶의 지혜라고 하지 않았던가. 사실 노인은 삶의 지혜라는 말을 떠올릴 때마다 자신에게도 그런 미덕이 찾아오리라고 기대했고 내심 그런 미덕이 주어지길 간절히 기원했다. 물론 그가 기대하는 미덕은 그를 과거의 자신으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지혜이자 스스로 만든 덫에 빠지지 않도록 만들어 주는 지혜였다.

=> As you get older, you get wiser 이 말을 뜻하는 건가. 나 역시 내심 인생이 주는 지혜를 기대하고 있는데 뜻대로 되려나~

 

이 책은 루이스 세풀베다가 브라질의 환경운동가 치코 멘데스에게 헌정하는 소설이라고 한다. 멘데스는 아마존의 고무 채취가 더 이상 경쟁력이 없어지자, 밀림을 개간하여 목축지로 만들어 버리려 하는 탐욕스러운 자본가들에게 용감히 맞서 환경 보호의 중요성을 호소하다 농장 지주 일당들에게 살해당하고 만다. 이 사건을 계기로 아마존 열대우림 보호에 대한 전 세계적인 관심이 높아졌으며, 또한 1992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UN환경개발회의가 열리는 촉매제가 되었다.

 

'지속가능한 개발'은 언뜻 멋진 표현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두 단어가 상반되는 의미이다. '지속가능하게(sustainable)' '개발(development)'을 계속할 수 있을까. 개발에는 필연적으로 자연과 생태계의 훼손이 동반되어야 하나. 지금까지 그래왔는데 앞으로 인류는 진보를 멈출 수 없다면, 역행할 수 없다면 자연과 어떻게 공존해 가야 하나. 이건 좀 엉뚱한 상상이지만, 인간을 제외한 모든 영장류, 곤충, 식물들은 상당히 불쾌할 것 같다. 대부분이 인류보다 이 지구에 먼저 존재해 왔고, 그네들이 평화롭게 자기만의 법칙을 만들어 잘 살고 있었는데 겨우 몇백만 년 전에 뜬금없이 인간이라는 애들이 불쑥 나타나서 삶의 터전을 엉망으로 만들고 들쑤셔놓질 않나... -_-  

 

현 시대의 모든 재앙은 인류의 욕심과 오만함에서 기인한다. 환경 파괴, 기후 변화, 전쟁, 기아, 폭력, 불평등, 질병까지도. 그런데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그랬듯이, 인류에게 희망을 걸고 싶다. 인류는 이런 거대한 과제도 현명하게 풀 수 있는 지혜가 있기에. 그리고 세상은 더 나아지고 있다는 기대를 포기하고 싶지 않기에.

 

인류를 넘어서 함께 살아가야 하는 대자연과 이 지구라는 아름다운 행성에 애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기를 추천하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