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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HELVES/NOVEL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 - JONAS JONASSON -

음, 이 책을 접하는 사람들은 내가 추측건대 십중팔구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을 읽고 이 작가의 이야기 솜씨에 매료되어 다른 작품도 궁금하여 읽은 게 아닐까 한다. (나도 그랬으니 ㅎ) 요나손의 작품은 역사의 실존하는(또는 했던) 인물들을 허구의 스토리에 버무려 넣어 코믹하게 되살리는 줄거리입니다요. 그래서 '100세 노인'에서 처칠, 김일성, 트루먼, 레이건, 스탈린, 마오쩌둥, 드골, 존슨 등이 나왔다면 이번 '까막눈이 여자'에서는 6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의 역대 스웨덴 수상, 역대 스웨덴 국왕, 만델라(주인공이 남아공 출신이라서), 후진타오가 나오신다. (이 작가 이거 명예훼손으로 소송당하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마구잡이 멋대로 넣는다... -_-;;)

 

때는 1960년대, 남아공 어느 빈민가에서 공동화장실 분뇨 수거 작업을 하던 10대 소녀 '놈베코'가 참으로 파란만장한 운명을 타고나서 남아공의 비밀 핵무기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비자발적으로?)하게 되는가 하면, 무능하고 비열한 그 프로젝트의 엔지니어랑 갇혀 있던 연구소에서 탈출해 스웨덴으로 밀입국해서 불법체류자로 살아가게 된다. 참, 그는 스웨덴으로 올 때 원자폭탄을 하나 같이 가지고 왔다... 대관절 어떻게 가져왔는지는 스포일러이므로 생략. (그리고 그것 때문에 이스라엘 모사드 요원 둘의 추격을 끈질기게 받게 되고)

그러나 정말이지 굴곡 많은 (똑똑해서 무슨 난관이든 슬기롭게 헤쳐나가기는 한다만...) 놈베코의 인생은 정말 내가 읽은 책의 등장인물 중 머저리 톱 3 안에 당당히 자리매김할 수 있는 '홀예르 1', 못지않게 무대포에다가 무식한 그의 여친 '셀레스티네'가 인생에 들어오면서 더더욱 꼬여만 간다! 참, 이 천하의 얼간이 홀예르 1은 쌍둥이 형제 홀예르 2가 있는데, 다행히도 넘버 2는 멀쩡한 제정신이 박힌 데다가 똑똑하기까지 해서 놈베코의 연인으로 발전한다. (그러나 그의 저주받은 형제 넘버 1이 그의 인생을 사사건건 망치는 데 우울증까지 잠시 겪는 참으로 안타까운 신세...) 

 

 

놈베코의 재치있고 두뇌회전 빠른 대처가 처음 남아공에 있을 때는 부각되다가, 나중에 스웨덴에 도착해서 저 '발암 커플' 홀예르 1과 셀레스티네를 만나고부터는 웬지 빛이 가려져서 주인공의 활약이 시들해진 느낌이다. 물론 저 커플의 멍청함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스토리의 지분 중 상당량을 할애했다는 것은 이해하나, 점차 도가 지나쳐서 독자들이 읽는 데 짜증을 느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게다가 책 전반부에 나오는 홀예르 쌍둥이의 원조 멍청이 아버지 잉마르의 공화주의 집착 및 국왕 퇴출 활동 얘기는 굳이 이렇게 길게 안넣어도 되지 않았나 싶다. (많은 블로그와 서평을 보니 나 이외의 독자들도 같은 생각이더구먼) 이런 정신산만한 아비가 있었다, 국왕에게 모욕당하고 앙심품고 별 ㄷㅅ 짓을 다 하다가 개죽음했다~ 로 간단하게 몇 장으로 요약해도 충분했을 듯?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놈베코라고!)

 

자신의 나라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는데도 시골 농가에서 천하태평인 스웨덴 국왕은 정말 매력적인 캐릭터로 그려졌다. ^^ 으으... '백작부인' 파트만 보면 닭볶음탕이 먹고싶어서 군침이 돌더라 ㅎㅎㅎ 저렇게 여유있고 자비로운(?) 국왕을 모시고 사는 백성들은 얼마나 즐거울까 싶습니다만. (물론 현실 정치를 돌봐야 하는 수상은 속터지겠지만!) 음~~ 그리고 독자들한테 돌려가면서 꿀밤 한대씩을 얻어맞아도 분이 풀리지 않을 우리의 핵발암 캐릭터 홀예르 넘버 1은 나름의 응징(?)을 두 번 당하지만, (한 번은 반대 정당에게, 한 번은 놈베코에게) 이 정도를 사이다라고 할 수 없었다는. -_- 게다가 역시 밉상 둘째가라면 서러울 그의 여친도 나중에 호되게 당했으면 싶었는데 것도 없었고, 참... 작가가 악당(?)들에게 좀체 권선징악의 교훈을 선사하지 않는다는 점이 참으로 못마땅하였소이다. 물론 그렇게 하면 식상하다는 의견도 있겠지만, 그것도 이 발암유발자들이 어지간하다는 전제하에 할 수 있는 말이고. -_-++ (솔직히 그 원자폭탄과 함께 지구를 떠나줬으면 하는 바람은 독자들 중 나만은 아니었을걸?)  

 

2019년을 뭔가 유쾌하고 재미있고 즐거운 책으로 마무리하고자 골랐었는데, 기대의 80% 정도는 만족시켜 줬으므로 뭐, 합격은 했음! 읽는 내내 홀예르&셀레스티네를 죽이고 싶은 충동은 놈베코에게 감정이입되어 상당히 고조되었지만... 그만큼 작가가 몰입시키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걸로 커버해 주고자 함. 요나손의 최근 신작인, 100세 노인이 한 살 더 잡숫고 다시 출몰하신 '핵을 들고 도망친 101세 노인'도 예약해 놓았으니, 2020년도 요절복통으로 어디 시작해 보세! ^^

 

책의 가장 마음에 들었던 문구로, 독후감 끝!

 

멍청함과 천재성의 차이는 천재성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익명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