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클레지오의 작품은 '황금 물고기', '폭풍우'에 이어 세 번째이다. 그의 필체 특유의 몽환적인 분위기, 그리고 늘 주인공이 어디론가 떠나는 줄거리가 마음에 들어서 이번 '사막'까지도 읽게 되었다. (사실 사막 관련 책이나 소설은 늘상 끌린다) '황금 물고기'는 정말 재미있게 읽었고, '폭풍우'는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해서인지 살짝 어색한 부분이 많고 분위기도 좀 우울해서 별로였는데, '사막'은 뭔가 재미가 없는건 아닌데 다시 이런 작품을 읽으라면 이제 충분합니다~할 것 같음. 음... 르클레지오의 책은 당분간 여기까지, 이제 좀 다른 작가들의 작품도 접해봐야겠다. 열혈 팬이라고 하기엔 애매하고, 그렇다고 관심없는 작가는 아니니 거참. 난 역시 어디에 푹 빠지는 스타일은 아닌가벼. -_-;;
줄거리가 '황금물고기'와 상당히 비슷하긴 한데, (여자 주인공이 북아프리카에서 지내다가 프랑스로 가서 살고, 결국 자신의 뿌리를 찾아 고향으로 돌아오는 스토리) 이번엔 주인공의 사막 부족 선조들의 이야기가 함께 등장한다. 과거의 이야기가 먼저 나오고 현재로 와서 랄라(주인공)의 여정이 쭉 이어진다. 사실 선조들 이야기는 좀 지루해서 집중도가 떨어지지만, 이렇게 과거와 현재를 엮어서 북아프리카 유목민의 삶을 엿보게 해준 점은 독특하긴 했다. 또 챕터를 '행복'과 '노예들의 땅에서'로 나눈 것도 특이했다. 나중에 작품 해설에도 나오지만, 자연에 그대로 동화되어 사막의 일부분이 된 유목민들의 삶을 '행복'이라고 했다면, 랄라가 바다건너 머물게 된 프랑스 마르세이유는 이민자들과 자본주의에 찌든, 돈과 물질에 대한 욕망의 '노예'가 된 도시인들의 내용이라서 '노예들의 땅'이라 제목을 붙였던 것.
고아인 자신에게 어느 부유한 남자가 청혼하러 찾아오고, 이를 혐오하여 도망친 랄라는 프랑스에서도 사막의 삶을 잊지 않는다. 그리고 물욕에 집착하는 나락에 떨어지지 않고 사막의 자유인 그대로의 정신을 유지한다. 그가 돈에 대해 그다지 미련을 두지 않는 인물로 그린 것도 모두 그런 맥락에서리라. 그리고 랄라가 문맹이라는 사실도, 그리고 끝내 문자를 배우지 않는 것도 그가 인간 문명에 기대지 않고 자유와 순수함을 지키는 일종의 방편이었을 것이다. '황금 물고기'에서는 주인공이 도시의 삶 깊숙이 들어가면서 인간의 여러가지 퇴폐적인 면을 조금씩 알아가고, 약간은 물들게 되는데, 랄라는 그런 부분이 거의 없다(담배 몇 번 피우는 정도?). 그래서 작가는 랄라가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온 뒤에도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오로지 자연에 의지하여 아이를 낳는 장면을 그린 것 같다.
나는 랄라가 처음 등장해서 사막의 친구들과 (나망 노인, 벙어리 목동 하르타니) 자유롭게 살아가던 때를 그린 파트가 가장 좋았다. 솔직히 그의 선조 얘기는 주구장창 사막을 건너는 모습과 백인 정복자들에 대항하여 싸우다 비참하게 패하는 내용 뿐이어서 진도를 빼기가 너무 힘겨웠음... -_- 물론 작가가 다 계획해서 넣은 내용이겠지만, 선조 얘기를 좀 줄이고 랄라 파트의 살을 좀 더 붙였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
앞으로도 프랑스 작가들의 작품을 더 많이 접해봐야겠지만, 일단 내 호감도 우선순위 리스트에는 르클레지오를 넣어야겠다. 프랑스 문학은 웬지 정서가 좀 안맞는 듯해서 예전부터 즐겨보진 않았는데... 이것도 편견이겠지. 독서의 지평을 넓히다 보면 르클레지오같은 죽이 맞는 작가를 또 발견할 수 있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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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야기가 전부 사실이 아니라 해도 랄라는 그가 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바닷가의 하얀 대도시에 대해, 종려나무 오솔길이며 꽃들과 오렌지 나무, 석류나무가 가득 자라고 있는 언덕 꼭대기까지 펼쳐진 정원들과 산만큼 높다란 탑, 끝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아주 긴 대로에 대해 이야기해줄 때면 랄라는 주의깊게 귀를 기울인다. 그러고는 이 기차를 타고 이 도시 저 도시 낯선 장소를 향해서, 먼지와 굶주린 개들도 사막의 바람이 새어 들어오는 판잣집도 없는 곳으로 가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다음에 떠나실 때는 나도 데려가주세요"라고 랄라는 말한다. "귀여운 랄라야, 이제 나는 너무 늙었어. 이제 다시는 가지 않을 거야. 그렇지만 너는 가게 될 거야. 이 도시들을 모두 볼 수 있을 테지. 그리고 나처럼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게 될 게야." - p.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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