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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HELVES/NOVEL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

'그리스'라는 나라를 언급하면 가장 대표작으로 떠오르는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대표작이다. 실은 집에 영어 번역본이 있어 수 차례 도전해 보았으나 처음 몇 페이지부터 넘나 많은 단어찾기에 질려 급포기하고 한글 번역본으로 결국 읽게 된 안타까운! (ㅠㅠ 그러나 영어본도 간간이 아래처럼 마음에 드는 문구는 찾아보며 들춰보았기에... 시간이 흐른 후 영어로 읽게 되면 훨씬 수월하지 않을까 위로가 된다!)

 

아 일단 고전 치고 굉장히 재미있다. (재미없는 고전은 가라! 난 재미있어야 읽을테다~) 이 책이 왜 유명한지 읽고 나서야 비로소 이해가 갔다! 술술 넘어간다. 작가가 불교에 관심이 있었던지, 화자(조르바가 '두목'이라고 부르는 서술자)의 인생과 인간에 대한 철학적 고뇌에 간간이 등장하는 불교적 성찰도 전혀 위화감 없이 줄거리에 스며든다. 정말 이 부분은 작가의 역량이 기가 막히게 발휘된 것이라고밖에 생각할 수가 없다. 스토리 진행에 있어서 언뜻 보면 어울리지 않을 법한 여러 내용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도록 만드는 것은 엄청난 필력이 아닌 이상 굉장한 어려움이 따르는데... 왜 알베르 카뮈가 자기 대신 카잔차키스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어야 했다고 주장했는지 200% 이해되었음. 게다가 내가 알기로 이 책은 카잔차키스가 앉은 자리에서 단 2달?? 만에 다 쓴 거라고 했다니 이거 정말 천재 아니십니까 -_-;;;

 

젊은 인텔리인 화자는 인생의 배움을 대부분 책을 통해 얻었으며, 이는 인생의 만고풍상을 오롯이 몸으로 겪고 부딪치고 헤쳐나간 조르바와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그렇다고 화자가 완전 답답한 세상물정 1도 모르는 샌님이라거나 그렇지는 않다. 다만 조르바와 대칭을 이루는 인물을 넣어야 하니 이런 스타일로 그린 듯하다) 야생마처럼 거침없는 조르바... 그리스의 파란만장한 현대사에 직접 뛰어들어 산전수전 다 겪으며 인생의 파도를 넘어온 조르바는 생각보다 행동이 먼저 나가는 말 그대로 '단순무식'한 인간형이지만, 그의 솔직함과 터프함, 또 절대 불의를 넘기지 못하고 와락 덤벼드는 정의감은 여자는 물론 남자조차 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의 행동에 구차한 변명이나 이유를 대지 않고, 따지지 않고 재지 않고 계산하지 않고 그저 마음이 가는 대로 인생이라는 망망대해에서 조타수로 항해하는 자유인!

 

혹자는 이 책의 내용이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만 전락시켜 비하가 심하다고 혹평하는데, 물론 나도 읽는 내내 약간의 불편함을 피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여느 고전이 그렇듯이, 시대상 반영은 독자가 이해하고 넘겨야 할 부분이므로 최대한 양해(?)하며 읽었다. 왜냐하면 그런 면만 부각시켜서 이 작품의 가치를 평가절하하는 것은 대작의 여러 훌륭한 면모를 등한시하는 안타까운 일일테니... 조금 스포일러지만, 조르바가 마을의 과부를 구하기 위해 온몸 던져서 마을 사람들 모두를 상대로 싸우는 장면에서는 크게 감동할 것이니, 그것으로 여자 비하는 많이 커버되었다고 너그러이 봐주시길. 더욱이 현실에서 이런 대장부는 참 보기 드문 일이니.

 

카잔차키스는 노벨문학상 후보에 몇 차례 올랐으나, 그리스 정교회에서 그의 작품이 신성모독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해서 수상을 반대했다고 한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도 사제들을 약간 불경한 행동을 하는 인물들로 그려놓았고,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그의 다른 작품인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도 그런 내용이라나. 하지만 끝내 조국을 저버리지 않고, 상에도 연연하지 않고 꾸준히, 의연하게 자신의 작품 세계를 구축하고 떠난 그에게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2020년 2월은 '그리스인 조르바'와 함께 해서 정말 행복한 한 달이었다. ^_^ (공교롭게도, 카잔차키스도 2월생임) 언제나 그렇듯 좋은 책은 인생을 정말 행복하고 풍요롭게 해준다. 아, 여담이지만 그리스 꼭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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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에.... 만일에 말이지요......'

'.....만의 하나, 그 사람들이 눈을 떴을 때, 당신이 지금의 암흑 세계보다 더 나은 세계를 보여 줄 수 있다면..... 보여 줄 수 있어요?'

나는 알지 못했다. 나는 타파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폐허에 무엇을 세워야 하는지, 그것을 나는 알지 못했다. 나는 생각했다. .....확실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 낡은 세계는 확실하고 구체적이다. 우리는 그 세계를 살며 순간순간 그 세계와 싸운다....... 그 세계는 존재한다. 미래의 세계는 아직 오지 않았다. 환상적이고 유동적이며 꿈이 짜낸 빛의 천이다. 이 땅의 아무리 위대한 선지자라도 이제는 암호 이상의 예언을 들려줄 수 없다. 암호가 모호할수록 선지자는 위대한 것이다.  - p.62~63 -

 

.....조르바는 학교 문 앞에도 가보지 못했고 그 머리는 지식의 세례를 받은 일이 없다. 하지만 그는 만고풍상을 다 겪은 사람이다. 그래서 그 마음은 열려 있고 가슴은 원시적인 배짱으로 고스란히 잔뜩 부풀어 있다. 우리가 복잡하고 난해하다고 생각하는 문제를 조르바는 칼로 자르듯,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고르디아스의 매듭을 자르듯이 풀어낸다. 온몸의 체중을 실어 두 발로 대지를 밟고 있는 이 조르바의 겨냥이 빗나갈 리 없다. 아프리카인들이 왜 뱀을 섬기는가? 뱀이 온몸을 땅에 붙이고 있어서 대지의 비밀을 더 잘 알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다. 뱀은 배로, 꼬리로, 그리고 머리로 대지의 비밀을 안다. 뱀은 늘 어머니 대지와 접촉하고 동거한다. 조르바의 경우도 이와 같다. 우리들 교육받은 자들이 오히려 공중을 나는 새들처럼 골이 빈 것들일 뿐.....   - p.94 -

 

최후의 인간은 자신의 원료가 되어 정신을 산출한 진흙이며, 이 정신이 뿌리내리고 수액을 빨아올릴 토양은 아무데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 인간이다. 최후의 인간은 자신을 비운 인간이다. 그 몸에는 씨앗도 똥도 피도 없다. 모든 것은 언어가 되고, 언어의 집합은 음악이 되어도 최후의 인간은 거기에서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그는 절대의 고독 속에서 음악을 침묵으로, 수학적인 방정식으로 환원시킨다.  - p. 196 -

 

예술은 우리의 오장 육부에 도사리고 있는 어둠의 살인적인 힘을 충동질한다. 필사적으로 살인과 파괴와 증오와 타락을 충동질하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예술은 달콤한 노래로 다시 나타나 우리를 구원해 주는 것이다.  - p.197 -

 

야만인들은, 악기가 종교적인 제사에 사용되지 않을 때 그 신성(神性)의 힘을 잃고 화음을 산출했다고 믿는다. 마찬가지로 종교는 내 내부에서 변질하여 예술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 p.251 -

 

'나는 지금도 마시고 피우지만 끊고 싶으면 언제든지 끊어 버립니다. 나는 내 정열의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고향도 마찬가지예요. 한때 몹시 그리워하던 적이 있어서 그것도 목젖까지 퍼 넣고 토해 버렸지요. 그때부터 고향 생각이 날 괴롭히는 일이 없어요. 터질 만큼 처넣는 것 이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금욕주의 같은 걸로는 안 돼요. 생각해 봐요, 두목. 반쯤 악마가 되지 않고 어떻게 악마를 다룰 수 있겠어요?'  - p.284 -

 

 

'나는 부활절이면 그리스도 시대처럼 영혼이 다시 한 번 붕 뜨는 기분이 되는데 올해는 다 텄어요. 이제는 겨우 몸만 다시 태어납니다.  맛있는 음식을 배에다 잔뜩 집어넣게 되지요. 그걸 다 똥으로 삭혀 내릴 수가 있습니까? 남는 게 있어서, 그게 기분이 되고 춤이 되고 노래가 되고 말다툼이 되는 거지요. 그게 바로 부활이라는 겁니다.'  - p. 336 -

 

나는, 인간이 성취할 수 있는 최상의 것은 지식도, 미덕도, 선()도, 승리도 아닌, 보다 위대하고 보다 영웅적이며 보다 절망적인 것, 즉 신성한 경외감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나는 신성한 경외감의 의미를 이해시켜 보려 했다.'조르바, 우리는 구더기랍니다. 엄청나게 큰 나무의 조그만 잎사귀에 붙은 아주 작은 구더기지요. 이 조그만 잎이 바로 지굽니다. 다른 잎은 밤이면 가슴 설레며 바라보는 별입니다. 우리는 이 조그만 잎 위에서 우리 길을 조심스럽게 시험해 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잎의 냄새를 맡습니다. 좋은지 나쁜지 알아보려고 우리는 맛을 보고 먹을 만한 것임을 깨닫습니다. 우리는 이 잎의 위를 두드려 봅니다. 잎은 살아있는 생물처럼 소리를 냅니다.

 

어떤 사람은 잎 가장자리까지 이릅니다. 거기에서 고개를 빼고 카오스를 내려다봅니다. 그러고는 부들부들 떱니다. 밑바닥의 나락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알게 되지요. 멀리서 우리는 거대한 나무의 다른 잎들이 서그럭거리는 소리를 듣습니다. 우리는 뿌리에서 우리 잎으로 수액을 빨아올리는 걸 감지합니다. 우리 가슴이 부풀지요. 끔찍한 나락을 내려다보고 있는 우리는 몸도 마음도 공포로 떨고 맙니다. 그 순간에 시작되는 게....

조르바, 그 순간에 위험이 시작됩니다. 어떤 사람은 정신이 아찔해지거나 정신을 잃고 또 어떤 사람은 겁을 집어먹습니다. 이들은 자기의 용기를 북돋워 줄 해답을 찾으려다가 <하느님!>하고 소리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잎사귀 가장자리에서 다시 심연을 내려다보고 있다가 용감하게 <나는 저게 좋아> 하고 말하지요.'  - p. 386-387 -

 

그렇다면, 저항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필연을 극복하여 외부적 법칙을 영혼의 내부적 법칙으로 환치시키고 존재하는 것을 깡그리 부정하고 자기 정신의 법칙에 따른 새 세계를 창조하려는 인간의 긍지에 찬 돈키호테적 반동이 아닐까! 이것은 결국 자연의 비인간적인 법칙을 반대하고 지금 존재하는 것보다 더 순수하고 우수하고 도덕적인 새 세계를 창조하려는 행위가 아닐까?  - p.388 -

 

But what of revolt? The proud, quixotic reaction of humankind to conquer Necessity and make external laws conform to the internal laws of the soul, to deny all that is and create a new world according to the laws of one's own heart, which are contrary to the inhumane laws of nature - to create a new world which is purer, better and more moral than the one that exists?

 

육체가 와해되어 버린 뒤에도 우리가 영혼이라고 부르는 것의 잔재가 남아 있을 수 있을까?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면 영원불멸을 그리는 우리의 끝없는 염원은 우리가 영원불멸하다는 사실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짧디짧은 우리 인생에서 무엇인가 영원불멸한 것을 섬기는 데서 유래하는 것은 아닐까?  - p.390 -

 

And when the body dissolves, does anything at all remain of what we have called the soul? Or does nothing remain, and does our unquenchable desire for immortality spring, not from the fact that we are immortal, but from the fact that during the short span of our life we are in the service of something immortal?

 

나는 무서워 고개를 흔들었다. 이따금 대지는 투명해져 우리는 밤이고 낮이고 지하 공장에서 일하는 막강한 통치자, 구더기의 존재를 깨닫는다. 그러나 우리는 황급히 눈을 돌리고 만다. 인간이란 어떤 것이든 참을 수 있는데 이 하얀 구더기만은 보고 있을 수가 없는 까닭이다.  - p.419 -

 

'인간의 머리란 식료품 상점과 같은 거예요. 계속 계산합니다. 얼마를 지불했고 얼마를 벌었으니까 이익은 얼마고 손해는 얼마다! 머리란 좀상스러운 가게 주인이지요. 가진 걸 다 걸어 볼 생각은 않고 꼭 예비금을 남겨 두니까. 이러니 줄을 자를 수 없지요. 아니, 아니야! 더 붙잡아 맬 뿐이지..... 줄을 놓쳐 버리면 머리라는 이 병신은 그만 허둥지둥합니다. 그러면 끝나는 거지. 그러나 인간이 이 줄을 자르지 않을 바에야 살맛이 뭐 나겠어요? 노란 카밀레 맛이지. 멀건 카밀레 차 말이오. 럼주 같은 맛이 아니오. 잘라야 인생을 제대로 보게 되는데!'  - p.429 -